지금으로부터 5년전인가... 선머슴같은 친구의 책상에 놓여진 앨범을 보았다. 뽀글뽀글한 머리와 선글라스 그리고 피어싱.. 뒷장은 의외로 심플하게 붉은색 카우보이 구두... '간지가 장난 아닌데'라며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가 말했다. "간지 죽이지? 들어봐. 너도 좋아할거야'
.. 래니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Lenny Kravitz의 음악은 60-70년대의 사이키델리아와 펑크가 혼합된 독특한 것으로 그를 제2의 지미 헨드릭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슈퍼 간지 패션의 소유자인 레니는 미국 여성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혹자는 하드 록 기타를 칠 수 있는 프린스라고도 한다. Lenny Kravitz는 비틀즈의 흑인 판이기도 하고, 우아한 팝 스타이기도 하며, 정열적인 헤비 메탈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올드 록을 좋아하건, 모던 록 팬이건, 사이키델릭 팝을 좋아하건, 달콤한 발라드 팬이건, 혹은 헤비 메탈 매니어건, 흑은 음악의 추종자들이건 누구든 Lenny Kravitz는 만족할 만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89년 첫 앨범 [Let Love Rule]을 발매하면서 데뷔한 레니 크래비츠는 10여년 간의 활동을 정리하면서 2000년에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를 발매했다. 모두 15곡이 실린 이 편집앨범은 특히 복고적인 사이키델릭 경향이 두드러지던 초창기 작품들-[Let Love Rule], [Mama Said]-그리고 복고 로커 스타일의 절정을 이루었던 [Are You Gonna Go My Way]와 약간은 상업적으로 실망을 안겨준 작품 [Circus] 그리고 재기작인 [5] 등 그간 그가 발매했던 5장의 앨범을 모두 아우르고 있었다.
이 앨범은 전세계적으로 8백만 장 이상이 판매되면서 음악계에서 그의 위치를 확인시켰다. 또한 여기에 수록되었던 애잔한 멜로디의 신곡 'Again' 역시 인기를 얻어 비디오 클립이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최우수 남자 비디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레니는 뛰어난 작곡가이며 멀티 연주자이며 프로듀서이며 또 카리스마를 지닌 라이브 퍼포머인 동시에 이젠 과연 대중적인 슈퍼 스타였다.
1964년생인 레니 크래비츠는 러시아계 유대인인 아버지 슬라이 크래비츠(Sly Kravitz)와 록시 로커(Roxie Rocker)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을 가진 바하마 출신의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록시 로커라는 이름은 TV에 출연하는 '연예인'이었던 그녀의 섹시한 가명일 듯 하지만, 생각해보면 레니 크래비츠가 가진 이미지하고도 썩 잘 어울린다. 어머니에 대해 노래하고 스튜디오 이름을 어머니의 이름을 따 짓는 등 레니는 주욱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듯 하다. 주로 뉴욕과 LA에서 성장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가까운 생활을 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년 성가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 등에서도 활동했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로미오 블루(Romeo Blue)라는 가명을 가지고 세션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연주 경험은 물론 음악 산업 안에서의 풍부한 노하우를 쌓았다. 한편 개인사를 보자면 그는 [코스비 가족(The Cosby Show)]에 출연해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배우 리사 보넷(Lisa Bonnet)과 결혼해 아름다운 커플을 이루었지만 그녀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낳은 뒤 헤어지고 만다.
1988년에 레니 크래비츠는 [버진(Virgin)] 사와 계약하고 1년간의 녹음을 거쳐 이듬해 데뷔 앨범 [Let Love Rule]을 발매했다. 존 레논(John Lennon)과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만남이라는 표현이 정말 어울렸던 그의 전격 복고 사운드는 거장의 재림이라는 극찬과 모방의 짜깁기라는 비난의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90년 그는 오노 요코, 그리고 요코가 낳은 존 레논의 아들 션(Sean Lennon)과 함께 존 레논이 노래했던 'Give Peace A Chance'를 걸프전에 맞추어 부활시키기도 했다. 그는 정말 지미 헨드릭스를 포함한 '69년 사랑의 여름과 존 레논을 무척이나 그리워하는 듯 보였다.
이즈음 마돈나(Madonna)에게 써준 에로틱 분위기 만점 트랙 'Justify My Love'가 '91년 1월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그는 재능있는 작곡가로서 다시한 번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일로 팝 음악계에서의 입지가 확장된 레니는 두 번째 앨범 [Mama Said]를 그 해에 발표했다.
기본적으로는 전작과 비슷한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지나친 존 레논 집착과 사이키델릭 성향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을 자유롭게 받아들인 이 앨범에서 상큼한 첫 싱글 'It Ain't Over 'Til It's Over'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오르면서 그는 바야흐로 록 스타의 왕좌에 오를 받침대를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앨범이 [Are You Gonna Go My Way]였다.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하면서 인기를 과시한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은 굵직한 그루브감 넘치는 파티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93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의 '최우수 남자 비디오' 부문을거머쥐었다. 그 뒤로 2년 후인 1995년에는 [Circus]를 발매했는데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멜로디의 훅이 없다는 평을 듣는 동시에 판매도 그다지 좋지 않아 전작으로 전성기는 끝났나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98년에 발매된 [5]는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면서 지금까지 발매된 앨범 중 최고의 판매량을 보여주었고 싱글 'Fly Away'와 영화 [Austin Powers: The Spy Who Shagged Me]에 삽입된 게스 후(Guess Who)의 리메이크 'American Woman'이 크게 인기를 얻어 레니 크래비츠의 건재함을 확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