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ontan Road


외화번역가인 이미도씨가 부산 해운대의 '달맞이 길' 영어 이름에 대한 글이다.



'달맞이 길'의 영어표현은....

제 이름의 미도(美道)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자연히 길 이름에 눈길이 잘 가더군요. 제가 으뜸으로 꼽는 길 이름은 부산 해운대의 '달맞이 길'입니다. 최근 동(東)부산대학교에 강연하러 간 길에 모처럼 달맞이 길을 거닐었습니다. 노랫말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가 입가에 맴돌았습니다. 당장에라도 앵두를 따서 실에 꿰고 싶어졌고, 떠나간 선녀를 그리며 밤마다 달을 마중하는 나무꾼의 모습도 연상되었지요.


그렇게 달맞이 길을 밟는데 영어 단어 두 개가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Moontan Road(달빛 태우기 길)'. 어쩜! 달맞이 길의 영어 이름을 'Moontan Road'로 짓다니! 아마도 해운대구청에서 지었거나 공모한 이름일 텐데요, 어찌나 아름답고 멋지던지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에겐 그 의미가 선뜻 전달되진 않겠지만 뭐 어떻습니까, 감칠맛이 나게끔 설명해주면 되겠지요. 저는 'Moontan Road'를 콩글리시(Konglish)라기보다는 우리 식 창작 영어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해운대는 작열하는 여름날의 'suntan(햇볕 태우기)'을 먼저 떠오르게 하는 곳이지요. 그걸 뒤집은 역(逆)발상의 이름 짓기! 달빛으로 살갗을 태운다는 상상! 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시적입니까. 온몸이 달빛에 물들 것만 같습니다. 아, 해운대에서는 낮에는 선탠을, 밤에는 문탠을!

이런 생각에 취하자 문득 소설가 이병주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낮에 느끼는 에로티시즘은 시각적이고 밤에 느끼는 그것은 촉각적이다." 월광(月光)이 촉촉이 드리워진 달맞이 길에서만큼은 에로티시즘도 분명 시각적일 것만 같습니다.



무능과 부폐를 당연시 여기는 나랏일하는 족속들,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사채업자, 살인에 굶주린 살인마등이 득실되는 세상에서 적어도 나에게 이런 글이 맑은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빠르게 다변해가는 세상속에서 시각은 병들어가고 촉각은 무뎌지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 오감은 쇄퇴해져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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